72시간을 버티는 ‘가정 대비 꾸러미’
정전·단수·통신 두절이 겹치면 집은 순식간에 자급 시험장이 됩니다. “도움이 올 때까지”가 아니라 “도움이 닿을 수 있을 때까지” 버티는 게 목표죠. 이 글은 한국의 아파트·오피스텔 생활 전제를 깔고, **가볍게 들고 나갈 가방(Go-Bag)**과 **집에 남아 버티는 세트(Home Kit)**를 현실 무게·부피·관리 주기까지 포함해 정리한 실전형 안내서입니다.
💡 왜 72시간인가: ‘공백의 시간’이 길다
큰 재난 뒤 24~72시간은 도로·전력·통신 복구와 구조 우선순위 판단에 쓰입니다. 이 시간에 가정이 물·식량·의약·정보를 스스로 감당하면, 구조 역량이 중증자에게 집중되고 2차 피해(저체온·탈수·감염)가 줄어듭니다. 이 글은 그 공백을 전제로 3일 버티는 설계를 제안합니다.
경험 한 줄: 장마철 엘리베이터 고장 때 계단 이동 12층을 해보니, **양손이 비는 장비(헤드램프·허리벨트)**가 체감 차이를 만들었습니다.
💧 물과 식량: 무게 분산과 순환 보관
물은 성인 1일 약 3.8L가 널리 쓰이는 기준입니다. 다만 이동성을 생각하면 500mL 소포장이 유리해요. 가족당 6~8병씩 개인 가방에 나눠 담으면 하중 분산이 쉽고, 필요 시 배급도 간단합니다.
식량은 조리 없이 먹을 수 있는 즉시 섭취형이 핵심(통조림·즉석밥·즉석국·에너지바·견과류). 수동 캔오프너는 반드시. Home Kit에는 정수 필터/정수정을 같이 보관해 부피 대비 지속성을 확보하세요.
경험 한 줄: 2L 생수만 쌓아두다 실제로 옮겨보니 버겁더군요. 이후 500mL 묶음으로 바꾸고, 아이 가방엔 가벼운 간식·위생류만 넣었습니다.
⚡ 정전 때 냉장·냉동 식품은 이렇게 다루면 안전해요. 한 화면 요약 👉 정전 시 냉장고 음식 보관 꿀팁
🔦 빛·정보·전원: 어둠과 단절을 먼저 뚫기
정전은 곧 안전 문제입니다. 헤드램프 1인 1개를 표준으로 삼으세요. 양손이 자유로워야 계단 이동·응급 처치·수납 정리가 수월해요. 손전등은 보조, 촛불은 화재 위험으로 지양.
정보는 휴대 라디오가 핵심(건전지형 또는 손 크랭크형). 전파 수신이 끊기지 않는 두 번째 채널을 확보합니다.
전원은 **20,000mAh 보조배터리 2대 + 케이블 2종(USB-C, 라이트닝)**을 세트로 묶고, 6개월마다 완충→40~60% 저장 루틴을 돌리세요.
경험 한 줄: 지하주차장 정전 때 휴대폰 불빛만으로는 한계가 컸습니다. 그 뒤로 문가 바구니 최상단에 헤드램프를 상시 고정했습니다.
🩹 구급·복약: ‘평소 처방 + 표준 키트’ 결합
응급은 세척→지혈→고정의 3단계가 핵심입니다. 거즈·압박붕대·삼각건·소독제·반창고·가위·핀셋·일회용 장갑을 기본으로.
상시 복용약 7일분은 지퍼백에 밀봉하고 처방전 사본·알레르기 카드를 함께. 물 없이 삼키기 쉬운 OD정을 일부 섞으면 이동 중 복약이 편해요.
경험 한 줄: 예전엔 감기약만 챙겨 아이 피부약을 못 찾아 곤혹스러웠습니다. 지금은 ‘아이/어른’ 분리 파우치로 바꿨습니다.
🧼 위생·보온: 2차 피해(설사·감염·저체온) 줄이기
물티슈·손소독제·휴지·KF94·소형 쓰레기봉투·위생백은 소분 패킹이 좋습니다. 이동 중 위생 동선을 단순화하죠.
보온은 비상 담요(마이러), 얇은 경량 상의, 모자·양말의 체감 효과가 큽니다. 젖은 옷은 압축팩에 즉시 분리해 체온 손실을 막으세요.
경험 한 줄: 겨울 새벽 대피 훈련 때 아이가 금세 식더군요. 이후 핫팩 4개를 아이 파우치 최상단에 고정했습니다.
🧾 문서·소액 현금: 오프라인 인증 복원
신분증 사본 2부(주민증/면허)·보험 증권 요약·가족/주치의/담임 연락처·반려동물 병원 정보는 지퍼백 2중 방수로. 모바일 신분증·클라우드가 막히는 상황에 대비한 오프라인 증빙입니다.
현금은 1만·5천원권 혼합을 소량. 단말기 먹통 시 교통·생필품 결제에 필요합니다.
경험 한 줄: 휴대폰 분실 때 비상연락망 카드가 큰 역할을 했어요. 지갑 속 얇은 카드 한 장이 의사결정 속도를 올립니다.
🎒 대피 가방 vs 자가 대비 세트: 역할로 나눠 설계
Go-Bag(대피 가방): 문가 고정. 물·즉식·헤드램프·라디오·보조배터리·구급·문서처럼 “지금 당장 나갈 때” 필요한 것만 경량화.
Home Kit(자가 세트): 베란다/팬트리 상단. 생수 박스·건전지·정수 필터·위생 보강품 등 용량형을 보관.
경험 한 줄: 바퀴 캐리어에 Go-Bag을 넣어봤지만 계단 환경에선 배낭이 압도적으로 편했습니다. 한국 주거에서는 배낭 추천입니다.
👶 특수 상황 맞춤: 영유아·고령·반려동물
영유아: 분유/이유식·젖병·기저귀·체온계·연령별 해열제·아기 담요. 유모차 대신 아기띠가 계단에 유리.
고령/만성질환: 복약 7~14일분, 보청기 예비 배터리, 의치 케이스·세정제, 혈당계 소모품, 주치의 연락처 동봉.
반려동물: 사료 3일분·여분 물·배변패드·예방접종 기록·목줄/캐리어·펫 ID 태그. 평소 대피소 수용 정책을 확인해 두면 당황을 줄입니다.
경험 한 줄: 반려묘 이동장 잠금이 약해 케이블 타이 2개로 보강해두었고, 실제 이동 시 안정감이 커졌습니다.
📞 가족 연락·만날 곳: 두 개의 점과 두 개의 경로
집 근처 옥외 합류 지점 1곳과 동네 밖 대체 지점 1곳을 미리 합의하세요. 문자·메신저가 흔들릴 땐 음성 사서함 규칙을 가족끼리 정해둡니다(예: “00시에 현 위치·상태·다음 이동지 10초 요약”). 비상연락망 카드는 지갑·가방·차량 글로브박스에 중복 보관이 안전합니다.
경험 한 줄: 초등생 자녀에게 학교 앞 편의점을 1차 합류 지점으로 가르치고, 주소·약도를 카드 뒷면에 인쇄해 반복 학습했습니다.
📱 10분 셋업으로 신고·위치공유가 자동으로 이어지게 만들어 두세요. 단계별 체크리스트 👉 스마트폰 ‘긴급 호출 & 위치 공유’ 완성 가이드
🏠 보관 위치·침수·도난: 말없이 작동하는 배치
아파트·오피스텔은 현관 신발장 하단/옆 칸에 Go-Bag, 베란다 선반 상단에 Home Kit. 반지하·침수 위험 구역은 바닥 보관 금지, 방수 컨테이너 + 높이 보관을 적용하세요. 외관은 무채색·라벨 최소화로 도난 리스크를 낮춥니다.
✅ 미니 체크리스트: 현관 앞 1분 점검
- 배낭 무게 체중의 10~15% 이내인가
- 헤드램프 작동·예비 건전지 유효기간 확인
- 비상연락망 카드 최신화(번호 바뀌면 즉시 갱신)
- 문가 고정 위치 주변 장애물 제거
- 보조배터리 보관 전압 40~60% 유지 메모
🔄 관리 주기: 6·12·24의 간단한 리듬
6개월마다 보조배터리 충전 상태, 라디오·헤드램프 작동, 건전지 교체.
12개월마다 물·식량 순환 보관(개봉-먹기-채우기), 문서 사본 업데이트, 대피 경로 재점검.
24개월마다 배낭 지퍼·어깨끈·바퀴 등 물리 상태 점검과 가족 구성 변화 반영.
경험 한 줄: 캘린더에 반복 알림을 걸어두니 작은 교체를 미루지 않게 되더군요.
🔚 마무리: 완벽보다 ‘작은 시작 + 꾸준한 순환’
대비 꾸러미는 한 번 완성하는 물건이 아니라 살아 있는 습관입니다. 오늘은 물·라이트·구급·문서만 모아 문가 한 지점에 고정해 보세요. 그리고 6개월 뒤, 다시 열어보면 됩니다. 위기 때 우리는 이미 무엇을 할지 알고 있는 상태가 되어 있을 거예요.